1. 여행 첫날
여행 첫날은 밀라노에서 시작했다.
오후 4시에 도착한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공항 픽업 서비스를 이용해서 숙소에 도착했다.
타지에서 한국인을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다.
운전기사님과 공항에서 만나 밀라노 시내까지 들어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이 싫어서 제대하자마자 이탈리아로 떠났고, 이탈리아에서 똑같이 한국이 싫어 이곳으로 온 아내분과 결혼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 시절을 견뎌낸 대단하신 분들이다.
나는 항상 생계를 걱정하면서 살아왔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면 세상에는 정말 용기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밀라노 숙소에 도착했다.
다음날 친퀘테레에 가기 위해 밀라노 기차역에서 도보 10분 이내에 있는 숙소를 구했고, 에어비앤비를 처음으로 이용했다.
숙소를 둘러본 남편이 말했다.
"자기야... 돈 아끼려고 그랬어요?"
숙소는 기차역 도보 10분 이내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깔끔하고 가성비가 좋았다.
밀라노 모기가 그렇게 무섭다고 해서 콘센트용 모기약까지 준비해 갔는데 친절한 집주인이 모기약뿐 아니라 핸드폰 충전기, 심지어 헤어 세팅 도구까지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었다.
아무튼, 이탈리아의 첫날밤을 무엇으로 장식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미식가인 남편이 좋아하는 미슐랭 레스토랑을 가기로 했다.
2. 미쉐린 가이드 (Michelin Guide)
미쉐린 가이드는 프랑스 타이어 제조회사인 미쉐린이 식당에 별점을 매겨서 매년 발간하는 여행 가이드 시리즈다.
프랑스어로는 '기드 미슐랭(Guide Michelin)'이다. 한국에서는 미쉐린 가이드라고 표기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미슐랭이라고 부른다. 미슐랭이라는 말 자체만으로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막강한 권위를 자랑한다.
우리는 여행 가는 곳마다 미슐랭 레스토랑을 한 번은 가보는데 생각해보면 기억에 남을 만한 식사를 한 적은 없다. 충격적인 가격만 기억에 남을 뿐... ^^
(1) 별의 기준 (출처 : Michelin Guide)
구분 | 별의 가치 |
별 세개 | 요리가 매우 훌륭하여 맛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날 만큼의 가치가 있는 식당 |
별 두개 | 요리가 훌륭하여 멀리라도 찾아갈 만한 식당 |
별 한개 | 요리가 훌륭한 식당 |
빕 구르망 (Bib Gourmand) |
합리적인 가격으로 좋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 |
(2) 선정방식
업계 경력이 있는 미슐랭 가이드 평가원이 신분을 밝히지 않고, 비용을 지불하고 식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 후에 가이드 발간을 위해 편집자들과 평가원들이 함께 별점 수여 여부를 결정하는 스타 세션이 진행된다고 한다.
미슐랭에 한번 선정되었다고 해도 매년 다시 검증한다고 한다.
(3) 평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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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재료의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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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법과 풍미에 대한 완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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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개성과 창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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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에 합당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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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메뉴의 통일성과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
3. 시차의 함정
남편에게 물었다.
"미슐랭 레스토랑을 여행 첫날 갈까요? 아니면 여행 마지막날 갈까요?"
"무조건 첫날이죠!"
여행 첫날은 숙소에 짐을 풀고, 근사한 미슐랭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는 일정으로 아주 간단하고 멋진 일정이었지만 한 가지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바로, 시차!!
한국과 이탈리아는 8시간이나 차이가 난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우리의 저녁식사 시간이 저녁 8시였으니 새벽 4시에 식사를 하는 것이다.
오 마이 갓...
숙소에 짐을 풀고 피곤해서 잠시 잠이 들었는데 너무 많이 자버렸다.
일어나자마자 온 힘을 다해 30분을 걸었다.
도착하자마자 지배인이 물어봤다
"샴페인 줄까요? 와인 줄까요?"
"물 주세요"
물 두 잔을 연거푸 마더니 가만히 지켜보던 직원들이 우리를 곤란해하기 시작했다
메뉴판을 갖다주고 영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안 들린다.
졸리고, 다리도 아프고, 물을 한잔 더 주면 좋겠는데...
아무 생각도 안 난다.
"아무거나 시켜줘요"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메뉴 주문하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지배인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시간 더 드릴게요. 다시 오겠습니다"
우리가 보이는 것은 역시 충격적인 가격이었다.
한국에서 분명 가격을 보고 예약을 했는데... 이곳에 와서 보니 더 충격이다.
우여곡절 끝에 주문을 마쳤다. 순식간에 세팅되는 놀라운 음식들
분위기와 가격과 훌륭한 서비스에 압도되어 어떻게, 무엇을 먹었는지 마치 꿈을 꾼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 4시에 먹었으니....^^
그래도 다녀본 몇 개의 미슐랭 레스토랑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를 했다.
특히 색이 매우 화려한 리조또가 인상적이었는데 너무 졸려서 다 먹지를 못했다.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와인 페어링이 훌륭했다.
"와인은 마시기도 전에 엄청난 향이 먼저 스며들어요. 처음 경험해봐요"
남편이 말했다.
"자기야, 이 와인 한잔에 25유로예요. 당연한 거예요"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니 오너 셰프(Antonio Guida)가 오셔서 직접 인사를 해주셨다.
요리가 어땠는지 물어보셨다.
오너 셰프의 겸손한 미소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지...
나도 나이 들면 아름다운 미소를 얼굴에 남길 수 있을까?
셰프님 미소로 완벽해지는 저녁이었다.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다시 30분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늘의 교훈, 여행 첫날은 절대 좋은 레스토랑은 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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